Travel - 낭랑로드
홍대 주차장길, 어느 부부의 발렌타인 데이
글 윤진
그림 이솔
2014년 발렌타인 데이는 정월대보름이었다. 금요일, 게다가 발렌타인 데이의 홍대. 홍대는 지하철역부터 붐볐고, 언제나 그렇듯 주차장길은 차도, 사람도 만원이었다. 나와 쏠은 주차장길을 따라 걸었다. 건물 위에서 바라보면 주차장길이 왜 주차장길인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포구청에서 운영하는 공영주차장을 가운데로 두고 그 양 옆으로 길이 나있다. 하얀색 주차구회선이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서고, 그 위에 올라선 차량들이 일렬종대로 줄지어 선다. 주차장길로 들어선 차량은 사람들을 따라 힘겹게 전진하다가 빈 주차공간을 발견하면 이내 차를 세운다. 그 길 한 켠에 상상마당이 서있다. 우리는 강연을 듣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 날이 날인만큼, 강연을 신청한 사람들이 대거 이탈하지는 않을까 했던 주최측의 우려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지난해 여러 신문사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밤이 선생이다>의 저자, 황현산 선생을 보기 위해서였다.
황현산 선생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강연을 하였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지금 무엇을 공부하십니까? 왜 불문을 선택했고, 다른 언어를 더 배운다면 무슨 언어를 선택하시겠는지요? 글을 읽으며 관찰의 깊이에 감탄한 작가가 누군지요?
그러나 정작 내가 던진 것은 엉뚱한 질문이었다.
윤 : 주로 밤에 작업을 한다고 하셨는데, 몇 시까지 하시는지요?
청중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 역시 웃었다. 그건 프라이버시라 하면서도, 답을 해주었다. 예전엔 새벽 6시, 지금은 새벽 3~4시였다. 본인이 게을러서 미루고 미루다 마감 전 날에야 어쩔 수 없이 글을 쓰느라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안다. 책에 담긴 긴 밤의 고뇌와 깊은 사유들을. 그의 글은 생각의 흐름을 켜켜이 담아내며, 편안하면서도 방향성이 분명했다. 강연을 마치고 사인회가 있었다. 나와 쏠은 가지고 온 책을 들고 나갔다. 전날 밤, 쏠은 선생에게 주기 위해 초콜릿을 만들기도 했다.
윤 : 쏠 초콜릿 드려. 네가 만들었잖아.
쏠 : 난 심장이 터질 것 같아 한 마디도 못하겠어. 오빠가 드려.
쏠 대신 초콜릿을 건네 드리고, 사인을 받기 위해 책을 내밀었다. 표지 한 장을 넘기었다. 거기에는 지난 11월, 책을 읽고 간단한게 남긴 글이 적혀 있었다.
"축사도 없고 누군가의 서평도 없다. 군더더기 없는 좋은 글이다. 두 번 읽어야 한다."
선생은 그 메모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와 쏠의 이름을 적고 사인을 하였다. 우리를 바라보고는, '부부구나'하고 반가워했다. 대보름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 처음으로 두 면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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