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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 홍대 주차장길, 어느 부부의 발렌타인 데이 - no.79 (2014년 3월 1일)

윤진 2014. 6. 29. 17:35





Travel - 낭랑로드

홍대 주차장길, 어느 부부의 발렌타인 데이


윤진

그림 이솔




2014년 발렌타인 데이는 정월대보름이었다. 금요일, 게다가 발렌타인 데이의 홍대. 홍대는 지하철역부터 붐볐고, 언제나 그렇듯 주차장길은 차도, 사람도 만원이었다. 나와 쏠은 주차장길을 따라 걸었다. 건물 위에서 바라보면 주차장길이 왜 주차장길인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포구청에서 운영하는 공영주차장을 가운데로 두고 그 양 옆으로 길이 나있다. 하얀색 주차구회선이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서고, 그 위에 올라선 차량들이 일렬종대로 줄지어 선다. 주차장길로 들어선 차량은 사람들을 따라 힘겹게 전진하다가 빈 주차공간을 발견하면 이내 차를 세운다. 그 길 한 켠에 상상마당이 서있다. 우리는 강연을 듣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 날이 날인만큼, 강연을 신청한 사람들이 대거 이탈하지는 않을까 했던 주최측의 우려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지난해 여러 신문사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밤이 선생이다>의 저자, 황현산 선생을 보기 위해서였다.


황현산 선생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강연을 하였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지금 무엇을 공부하십니까? 왜 불문을 선택했고, 다른 언어를 더 배운다면 무슨 언어를 선택하시겠는지요? 글을 읽으며 관찰의 깊이에 감탄한 작가가 누군지요?

그러나 정작 내가 던진 것은 엉뚱한 질문이었다.


윤 : 주로 밤에 작업을 한다고 하셨는데, 몇 시까지 하시는지요?


청중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 역시 웃었다. 그건 프라이버시라 하면서도, 답을 해주었다. 예전엔 새벽 6시, 지금은 새벽 3~4시였다. 본인이 게을러서 미루고 미루다 마감 전 날에야 어쩔 수 없이 글을 쓰느라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안다. 책에 담긴 긴 밤의 고뇌와 깊은 사유들을. 그의 글은 생각의 흐름을 켜켜이 담아내며, 편안하면서도 방향성이 분명했다. 강연을 마치고 사인회가 있었다. 나와 쏠은 가지고 온 책을 들고 나갔다. 전날 밤, 쏠은 선생에게 주기 위해 초콜릿을 만들기도 했다.


윤 : 쏠 초콜릿 드려. 네가 만들었잖아.

쏠 : 난 심장이 터질 것 같아 한 마디도 못하겠어. 오빠가 드려.


쏠 대신 초콜릿을 건네 드리고, 사인을 받기 위해 책을 내밀었다. 표지 한 장을 넘기었다. 거기에는 지난 11월, 책을 읽고 간단한게 남긴 글이 적혀 있었다.

"축사도 없고 누군가의 서평도 없다. 군더더기 없는 좋은 글이다. 두 번 읽어야 한다."

선생은 그 메모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와 쏠의 이름을 적고 사인을 하였다. 우리를 바라보고는, '부부구나'하고 반가워했다. 대보름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 처음으로 두 면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