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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 아름다운 것이 강한 것이다, 수원화성 - no.80 (2014년 3월 15일)

윤진 2014. 7. 2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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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이 강한 것이다, 수원화성


윤진

그림 이솔




1번 국도를 따라 수원화성을 지나는 길, 쏠이 묻는다.

쏠 : 화성은 얼만해?

윤 : 수원보다 커.


쏠 : 수원보다 크다고?

윤 : 응

쏠 : 진짜? 말도 안돼.


윤 : 지금 수원화성 생각하고 있지?

쏠 : 아. 화성시 말한 거였어?


수원에 있는 성이 수원보다 크다면 그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이다. 수원의 배꼽, 화성은 조선 정조 때인 18세기 말에 지어졌다. 수원군이 지금의 수원시와 나머지 지역으로 분리되며, 나머지 지역의 이름은 화성에서 이름을 따 화성군이 되었다. 그러나 화성은 화성에 없고, 수원에 있다. 그래서 성을 수원성이라고도 하고, 수원화성이라고도 한다. 


팔달산의 동쪽 기슭에 자리잡은 화성은 1794년부터 1796년까지 2년 9개월에 걸쳐 쌓은 것으로 동서남북에 대문이 있고 수문, 암문, 포루 같은 시설물들이 갖추어져 있다.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방어를 위해 주로 산성을 만들었다. 산지지형이 많고 방어에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적이 침입하면 산성에 올라가 성문을 굳게 닫고 성을 지켰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승리해 적이 물러나더라도 읍으로 돌아와 보면 읍은 갖은 약탈과 파괴로 폐허가 되어 있었다.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었다. 


유형원과 같은 실학자는 이러한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읍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은 주민이 살 정도로 커야 하고, 주민이 많이 살 수 있도록 상공업을 장려해야 하며, 성에 포루 등을 설치해 적이 쳐들어왔을 때에도 피하지 않고 싸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읍성은 백성을 근간으로 한다. 성은 관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한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화성이었다. 


수원천과 화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수문과 언덕을 바라본다. 지형을 따라 성곽이 이어진다. 물길 위에는 수문인 화홍문이 있고, 언덕 위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 방화수류정이 자리잡고 있다. 군사용 시설인지 휴양을 위한 시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당시에도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듯하다. 성이 완공된 뒤 정조가 성을 둘러볼 때, 대동했던 신하들 가운데 한 명이 물었다. 


신하 : 왜 군사용 건축을 이처럼 예쁘게 짓습니까? 용맹하고 험악해야 적을 물리칠 것 아닙니까?

정조 : 아니다. 아름다움이 곧 적을 이기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