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랑로드 11

[빅이슈] 베를린에서 온 편지 no.92 (2014년 9월 15일)

Travel - 낭랑로드베를린에서 온 편지 글 윤진그림 이솔 독일로 유학을 떠난 형은 독일에서의 경험을 알려주기 위해 편지를 보내주었다. 베를린에서 온 편지는 지난해 10월을 시작으로 11월과 올해 2월, 7월에 깜짝 선물처럼 날라왔다. 사회과학도인 형은 독일 사회를 유심히 관찰하고 자신이 인상깊게 바라본 것들을 들려주었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대학 교육제도였다. 독일에서는 만18세가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라고 한다. 대학교 등록금은 무상이고,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학생은 정부에서 '바펙'이라는 무이자 대출을 받아 생활비로 쓴다. 44만 명(전체 대학생 가운데 28%)의 학생이 한달 평균 448유로(60만원)를 대출받는데, 졸업 후 절반만 갚으면 된다. 알바 시급은 ..

[빅이슈] 대지가 건축이 되고, 건축이 대지가 되다 - no.85 (2014년 6월 1일)

Travel - 낭랑로드 대지가 건축이 되고, 건축이 대지가 되다 글 윤진 그림 이솔 이대는 언제나 공사중이었다. 2003년 공간위원회를 구성한 이화여대는 캠퍼스의 부족한 공간을 위해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2005년 공사를 시작한 ECC(Ehwa Campus Complex)는 2008년 5월 공사를 마쳤다. 지하 6층의 건물이었다. ECC 공사가 끝나고 정문 공사가 이어졌다. 캠퍼스 곳곳 학생회 학생들이 걸어놓은 현수막이 보였다. "학교는 언제나 공사 中" 공사는 계속되고, 등록금은 매해 올랐다. 매년 등록금 투쟁이 벌어졌다. ECC에 고급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입점하며, '종합상업시설세트'라는 비판이 일었다. 건물만 놓고 본다면 독특한 발상으로 만들어진 획기적인 건축물이다. 대지와 건축이 만나는 랜..

[빅이슈] 강남을 걷는다, 하늘을 만난다 - no.84 (2014년 5월 15일)

Travel - 낭랑로드강남을 걷는다, 하늘을 만난다 글 윤진그림 이솔 * 강남은 낯설다. 대학을 다닐 때부터 내가 살아온 생활반경은 강북이었고, 친구들을 만나거나 서울을 둘러보기 위해 가는 곳도 주로 강북의 어딘가였다. 어쩌다 한두 번 강남에 가더라도 두더지처럼 지하철역에서 솟아올랐다가 낯선 풍경에 놀라고는 다시 지하철역으로 쏙 들어가곤 했다. * 졸업을 앞두고 한 방송국 시사교양 PD를 지원한 적이 있다. 2차는 종합상식과 작문시험었다. 작문주제는 주어진 한 문장을 이어 70분간 2페이지를 작성하는 거였다. 나는 그 한 문장을 보고 두더지처럼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강남역 6번 출구를 나섰다." 그렇게 막막한 글쓰기는 처음이었다. * 직장인이 되고, 수원에 살게 된 이후 강남을 지나치거..

[빅이슈] 화가를 위한 집, 모두를 위한 미술관 - no.78 (2014년 2월 15일)

Travel - 낭랑로드화가를 위한 집, 모두를 위한 미술관 글 윤진그림 이솔 화가를 위한 집, 모두를 위한 미술관 경복궁 서쪽 일대를 일컫는 서촌. 그곳에 사는 형을 만나자 형은 근처에 문을 연 미술관을 보고 가라 했다. 개관한지 1주일이 채 안 되었을 때였다. 형 : 박노수 화백이 살던 집인데 얼마전에 미술관으로 열었어. 원래 그 집은 친일파 윤덕영이 딸을 위해 지은 건물인데, 1972년부터 박노수 화백이 들어와 살았어. 박노수 화백? 동양화를 그린 화가야. 그리고 배우 이민정 알지? 박노수 화백이 그녀의 외할아버지야.'서촌주거공간연구회'에 들 정도로 동네에 애착이 많은 형은, 디테일하면서도 깨알같은 설명을 잊지 않았다. 옥인길을 따라 수성계곡을 향해 걸어 오르자, 남도분식을 지나 박노수朴魯壽 이름 ..

[빅이슈] 문래동 예술창작촌 : 마을, 이야기 그리고 예술 - no.77 (2014년 2월 1일)

Travel - 낭랑로드문래동 예술창작촌마을, 이야기 그리고 예술 글 윤진그림 이솔 나와 쏠이 문래동 예술창작촌을 알게 된 건 제천의 ‘대전리’라는 조그만 마을에 있는 한 폐교에서였다. 내가 살던 고향 마을에서 30분을 걸어 다닌 적이 있는 학교였다. 교문에는 학교 이름 같지 않은 이름이 ‘그려져’ 있었다. '마을이야기학교’ 무얼 하는 공간인지 궁금해 들어갔다. 농활을 나온 것처럼 푸근하면서도 느긋한 분위기의 청년들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에는 도시의 젊은 예술가들이 내려와 살며 예술 창작을 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 마을 그림으로 달력을 만들고 마을영화제를 열었다. 교실과 복도에는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만든 온갖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마을의 이야기를 담고 이..

[빅이슈] 슬라이딩 도어즈, 서울역 - no.76 (2014년 1월 15일)

Travel- 낭랑로드슬라이딩 도어즈, 서울역 글 윤진그림 이솔 * : 지하철을 타느냐, 타지 못하느냐로 달라진 인생을 그리는 기네스 팰트로 주연의 영화 경부선, 경의선, KTX, 지하철 1호선과 4호선, 인천국제공항철도, 역사 앞 버스환승센터까지, 수많은 육상 교통 수단의 기점이자 종점인 서울역.몇 년 전 서울과 충남 아산을 오가던 때가 있었다. 일요일 저녁 8시, 서울역을 출발해 천안아산역으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출발이 조금 늦었고, 바로 앞에서 2호선 지하철을 놓쳤다. 시작이 좋지 않았다. 시청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할 때도 서둘렀지만 내 앞에서 스크린도어가 닫혔다. 다음 지하철은 3정거장이나 뒤에 있었다. 머릿속엔 온통 탈 수 있을까? 탈 수 없을까? 하는 생각 뿐이었..

[빅이슈] 언제나 봄봄, 양재 꽃 시장 - no.75(2014년 1월 1일)

Travel - 낭랑로드언제나 봄봄, 양재 꽃 시장 글 윤진그림 이솔 지난달, 친구의 결혼이 있었다. 10년을 연애한 오래된 커플이었다. 나와 쏠의 결혼파티 사회를 봐준 터라 우리도 무언가 해주고 싶어 재미로 몇 개의 쿠폰을 줬다. 스냅 사진 촬영, 식전 영상 제작, 포토테이블 꾸미기. 사진 찍는 거랑 식전 영상 만드는 건 어떻게든 할 수 있었지만, 사실 포토테이블은 꾸며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녀석, 덜컥 포토테이블을 부탁한다. 간도 크다. "괜찮겠어?" 다시 묻는 내 목소리가 살짝 떨린다. 쏠은 일주일 동안 틈틈이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고, 물건들을 주문했다. 테이블을 장식할 사진과 액자, 신랑신부에게 축하 메시지를 쓸 사진엽서들. 무엇보다, 결혼 당일날 사야 하는 게 하나 있었다. 꽃이었다. 해가 짧..

[빅이슈] 무계획 달밤 산책, 경리단길 - no.73(2013년 12월 1일)

Travel - 낭랑로드무계획 달밤 산책, 경리단길 글 윤진그림 이솔 요즘 여기저기에서 '핫플레이스'로 소개되곤 하는 경리단길. 길의 이름은 그 시작점에 있는 육군중앙경리단에서 유래했다. 시간이 흘러 육군중앙경리단은 국군재정관리단으로 이름이 바뀌고, 길의 정식 도로명은,'회나무로'로 정해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 길을 경리단길이라 부른다. 그랜드 하야트 호텔이 있는 경리단길 위쪽은 교통이 불편해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브런치를 즐기러 나온 인근 고급 주택가의 사모들을 비롯해 차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녹사평역에서 가까운 경리단길 아래쪽은 '리틀 이태원'이라 불릴만큼, 이태원을 닮았다. 외국인 거주자들이 많아지며, 그들을 상대하는 특색있는 음식점과 카페, 술집, 빵집이 하나, 둘 들..

[빅이슈] 혀끝으로 떠나는 이국, 이태원 골목길 - no.72(2013년 11월 15일)

Travel - 낭랑로드혀끝으로 떠나는 이국, 이태원 골목길 글 윤진그림 이솔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많고, 한식보다 외국 음식점이 많을 것 같은 이태원에서는 몇 개국의 음식을 팔고 있을까? 용산구에 따르면 약 30여 개국의 음식점이 이태원에 있다. 중국,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과 같이 비교적 흔한 곳은 물론이고 유럽(스페인, 불가리아, 그리스, 터키), 아프리카(이집트, 나이지리아), 남미(브라질, 파라과이)와 같이 쉽게 접하기 힘든 음식점들까지 있다. 해방 후 미군들을 대상으로 조악한 기념품 따위를 팔던 구멍가게들이 지금은 번듯한 양복점, 골동품 가게, 레스토랑을 차렸다. 이국적이고 다국적인 풍경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며 이태원은 관광 명소가 되었고, 1997년, 서울 최초로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빅이슈] 북촌, 망각의 도시에 남겨진 조각난 기억 - no.70(2013년 10월 15일)

Travel - 낭랑로드북촌, 망각의 도시에 남겨진 조각난 기억 글 윤진(재능기부)그림 이솔(재능기부) 서울에 남아있는 한옥은 드물다. 수많은 도시들 가운데 서울만큼 유래 깊은 도시는 드물지만, 서울만큼 기억을 잃은 도시도 드물다. 기억상실증을 앓는 환자처럼 서울은 지난 기억을 잃어 버렸다. 하늘을 자르는 스카이라인과 잿빛 안개에 휩싸인 도시, 서울은 릴케가 읊었던 '고향도 어머니도 없는'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육백년의 도읍지, 서울을 들여다보면 곳곳에 파편처럼 남겨진 기억과 마주한다. 궁궐과 4대문 같은 건축물과, 근대 건축, 1만 3천호 남아있는 한옥이다. 서울에 있는 340만호의 주택 가운데 0.4%도 되지 않은 한옥은 옛 한양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게 한다. 한옥마을로 유명한 북촌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