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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 화가를 위한 집, 모두를 위한 미술관 - no.78 (2014년 2월 15일)

윤진 2014. 6. 1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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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를 위한 집, 모두를 위한 미술관 


윤진

그림 이솔




화가를 위한 집, 모두를 위한 미술관 


경복궁 서쪽 일대를 일컫는 서촌. 그곳에 사는 형을 만나자 형은 근처에 문을 연 미술관을 보고 가라 했다. 개관한지 1주일이 채 안 되었을 때였다. 

형 : 박노수 화백이 살던 집인데 얼마전에 미술관으로 열었어. 원래 그 집은 친일파 윤덕영이 딸을 위해 지은 건물인데, 1972년부터 박노수 화백이 들어와 살았어. 박노수 화백? 동양화를 그린 화가야. 그리고 배우 이민정 알지? 박노수 화백이 그녀의 외할아버지야.

'서촌주거공간연구회'에 들 정도로 동네에 애착이 많은 형은, 디테일하면서도 깨알같은 설명을 잊지 않았다. 


옥인길을 따라 수성계곡을 향해 걸어 오르자, 남도분식을 지나 박노수朴魯壽 이름 석자가 한자로 적힌 깔끔한 하얀 대문이 보였다. 간송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박길륭이 1938년에 지은 집이었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간송미술관과 달리 벽돌로 지어진 박노수미술관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한옥과 양옥 양식에 중국 건축기법까지 더한 2층의 빨간 벽돌집이었다. 반들반들 빛나는 나무 마룻바닥과 벽난로, 삼각형 다락 공간이 가옥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다. 


쏠 : 이민정은 좋겠다.

윤 : 왜? 이병헌이랑 결혼해서?

쏠 : 아니. 외할아버지가 이런 곳에 살아서. 어렸을 때부터 놀러왔을 거 아냐.


한 가족의 역사를 품은 생활 공간은 고인이 된 화가를 위한 전시공간이 되었다. 마치 집에도 삶과 죽음이 있어, 고인을 위해 집이 미술관으로 바뀐 듯했다.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본다. 화선지 위에 채색된 노랗고 파란 색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화가의 그림이 그의 빈 자리를 채운다. 


자신의 가옥을 미술관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개방하기를 바란 화가는 집과 천여 점의 그림을 기증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2월, 미술관 개관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향년 87세였다. 그해 9월 미술관이 문을 열고, 동네 사람들도 들여다 보기 힘들던 옥인동의 '비밀 정원'에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집을 둘러싼 정원에는 여러 모양과 빛깔의 수석과 조경수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다. 정원을 둘러보고 가옥 뒤 언덕길을 따라 전망대에 올라갔다. 미술관과 동네가 내려다 보인다. 화가가 무던히도 내려다 봤을, 바로 그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