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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 북촌, 망각의 도시에 남겨진 조각난 기억 - no.70(2013년 10월 15일)

윤진 2013. 10. 2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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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망각의 도시에 남겨진 조각난 기억


윤진(재능기부)

그림 이솔(재능기부)






서울에 남아있는 한옥은 드물다. 수많은 도시들 가운데 서울만큼 유래 깊은 도시는 드물지만, 서울만큼 기억을 잃은 도시도 드물다. 기억상실증을 앓는 환자처럼 서울은 지난 기억을 잃어 버렸다. 하늘을 자르는 스카이라인과 잿빛 안개에 휩싸인 도시, 서울은 릴케가 읊었던 '고향도 어머니도 없는'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육백년의 도읍지, 서울을 들여다보면 곳곳에 파편처럼 남겨진 기억과 마주한다. 궁궐과 4대문 같은 건축물과, 근대 건축, 1만 3천호 남아있는 한옥이다. 서울에 있는 340만호의 주택 가운데 0.4%도 되지 않은 한옥은 옛 한양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게 한다. 한옥마을로 유명한 북촌에는 1,300여채의 한옥이 있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동네로 삼청동, 가회동, 원서동, 계동, 재동 일대를 말한다. 1984년 한옥 보전 지구로 지정되었으나, 한때 주민들의 요구로 해제되어 600여채가 헐려 나가는 위기를 겪었다. 2001년부터 한옥등록제를 실시해 자발적으로 한옥을 짓고 가꾸려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삼청동은 카페와 식당, 갤러리가 오밀조밀 어울려 예쁜 거리를 만들고 있다. 잔재미가 많은 곳이라 데이트, 출사 코스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지난해 3월 삼청동의 한 갤러리에서는 마이클 케냐 전이 열렸다. 전시장 입구에는 '소리 없음이 세상 모든 소리를 이기네'라는 백거이의 시가 적혀 있었다. 


쏠: 사진 참 좋다. 하얀 여백이 많아 그런지 동양화를 보는 것 같아.

윤: 게다가 색이 없어. 백거이의 시를 빌리면, '색채 없음이 세상 모든 색을 이긴' 사진이랄까.

쏠: 이제 나는 케냐처럼 사진을 찍을거야.

윤: 얼마전엔 스티브 맥커리처럼 찍는다고 했잖아. 강렬한 색채가 마음에 든다며.

쏠: 사진은 움직이는 거야.


대한민국 출사 1번지답게, 삼청동에는 묵직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시각으로 세상을 담아냈다. 날이 저물었다. 눈이 내릴 것처럼 하늘이 흐리고 날씨가 쌀쌀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골목길, 얼기설기 하트 모양으로 만든 등과 등 아래 두 연인이 보였다. 찰나의 거장, 쏠은 삼청동의 골목을 화면에 꽉 차게 담았다. 케냐에게 배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