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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 무계획 달밤 산책, 경리단길 - no.73(2013년 12월 1일)

윤진 2014. 3. 6. 22:06







Travel - 낭랑로드

무계획 달밤 산책, 경리단길


윤진

그림 이솔






요즘 여기저기에서 '핫플레이스'로 소개되곤 하는 경리단길. 길의 이름은 그 시작점에 있는 육군중앙경리단에서 유래했다. 시간이 흘러 육군중앙경리단은 국군재정관리단으로 이름이 바뀌고, 길의 정식 도로명은,'회나무로'로 정해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 길을 경리단길이라 부른다. 그랜드 하야트 호텔이 있는 경리단길 위쪽은 교통이 불편해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브런치를 즐기러 나온 인근 고급 주택가의 사모들을 비롯해 차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녹사평역에서 가까운 경리단길 아래쪽은 '리틀 이태원'이라 불릴만큼, 이태원을 닮았다. 외국인 거주자들이 많아지며, 그들을 상대하는 특색있는 음식점과 카페, 술집, 빵집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경리단길의 한 음식점에서 친구들과 식사를 마치고 나와 이태원에 있는 재즈바에 가기로 했다. 지도 앱을 열고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하자 가장 빠른 경로를 알려주었다. 약 1킬로미터,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큰 도로를 따라 우회하는 길이 아니라 마을을 관통하는 길이었다. 최단거리였지만, 고저차를 고려하지 않은 경로였다.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오르막길이 시작되더니, 급경사가 이어졌다. 눈이 내리면 그대로 썰매장으로 써도 될 것 같은, 그런 경사였다. 친구들은 마을 입주를 앞두기라도 한 것처럼 한겨울을 걱정스러워했다. 그러나 걱정도 사치였다. 조금씩 숨이 찼다. 난데없이 등반을 시작한 기분이었다. 얼마쯤 올라왔을까? 뒤를 돌아보자 달빛과 함께 남산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밀물이 차오르듯 어둠에 잠긴 마을은 고요했고, 마을을 횡단하는 낯선 이방인들은 이야기와 웃음소리로 달밤의 적막을 깨뜨리고 있었다. 언젠부턴가 깡새는 마을의 고요에 물든 듯, 말이 없었다. 쏠은 깡새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듯, 쏠에게 갑양이 말했다.


"착각하지마. 깡새 지금 열받은거야. 너 또, 야경이 아름답다느니, 낭만적이라느니 그럴려고 하지?"


10년 지기의 독심술에 깜짝 놀란 쏠은 항변했다. 일부러 이 길로 데리고 온 건 아니라고. 그저 지도에서 알려주는 대로 가고 있는 것 뿐이라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달밤이 아름다운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