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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산책. 로마로 가는 비행기

윤진 2014. 6. 16. 22:36


[낭랑로드] 이탈리아 산책

로마로 가는 비행기 -


윤울

그림 이솔





로마로 가는 비행기, 내 옆 좌석에 한 남자가 앉았다. (고도 비만이었다) 그의 부푼 몸이 내게 닿을 것만 같았다. 그 사람은 자리에 앉자마자 의자를 뒤로 젖히고 남들 허벅지만한 발을, 아니 팔을 왼쪽과 오른쪽 팔걸이에 하나씩 툭, 툭 걸더니 이내 시끄럽게 코를 골며 잠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내 고막을 잠시 마비시키고 싶었다. 중국 사람 같았는데, 책꽂이에는 한국 신문이 꽂혀 있었다. 그렇지만 정말 한국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빵이 나오자 잠깐 깬 그는 쩝쩝거리는 소리를 내며 허겁지겁 빵을 먹어 치웠다. 다 먹어치우고나자 의자 깊숙이 등을 묻더니, 다시 코를 골기 시작했다. 


뒷좌석에서도 나의 청각 세포를 괴롭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서서히 볼륨을 높여온 듯, 어떤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조금씩 커지며 내 신경을 긁어댔다. 날카로운 하이톤의, 청각 세포 또한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여자는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의 여자에게 이것 저것 끊임없이 가르치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도 하필, 우리나라말이었다. 듣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내용이 들렸다.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엘리베이터의 줄이 하나씩 끊어지듯 인내심이 무너져 내렸다. 쏠이 잠에서 깼다. 뒷좌석 아줌마를 노려보았다(는 물론, 쏠의 생각이고 아줌마는 신경쓰지도 않았다).





거기에 어떤 냄새까지 나를 괴롭혔다. 틈틈이 그리고 집요하게. 장을 막 탈주한 고약한 냄새였다. 커트 보네거트는 '우리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냄새를 피우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도 이런 냄새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고도비만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한쪽으로 꺾고 비행기가 하강하는 줄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남자 역시 나를 꺼릴만한 일이 일어났다. 나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기침이 나왔다. 연달아 두 번. 그러자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남자가 허리를 세우고는 신문지 옆에 꽂힌 물티슈를 찾았다. 봉지를 뜯고 물티슈를 꺼내더니, 자기 팔을 닦았다. '독침'이라도 되는 듯 그는 꼼꼼히 닦았다. 그는 물티슈를 앞좌석 책꽂이에 집어 넣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는 이번 비행에서 자신이 한 일들은 전혀 모른 채, 그저 나한테서 받은 불쾌한 경험만을 기억할 것이었다. 막연한 불공평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에게 증오를 느꼈다)





"칼잠을 자야 하는 수인에게 여름철 옆 사람은 증오의 대상이다. 섭씨 36.5도 열 덩어리일 뿐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나는 36.5도의 소음 덩어리와 냄새 덩어리에 둘러싸인 수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 저기 침이나 튀는 덩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