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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 오고 싶었지만 아는 게 별로 없다.
"남편, 모스크바에서 가장 보고 싶은 게 어딥니까?"
"하나만 보면 됩니다. 아이스크림 콘 세트처럼 보이는 건물. 그게 뭐죠? 크렘린인가요?"
"성바실리 성당입니다."
"지금 보러 가죠!"
숙소에서 트베르스카야를 따라 걸어 갔다. 주말도 아닌데 붉은 광장 문을 닫았다. 무슨 일일까? 승전기념일 행사를 준비하느라 그랬다. 광장 바깥에서 성 바실리 성당을 봐야 했다. 주말에야 광장을 연다고 했다. 그때면 뻬쩨르부르그에서 돌아오는 날이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날이 더워 차나 한 잔 할 요량으로 백화점 같은 건물에 들어갔다. 엄청난 파사드의 건물이었다. 깊이가 250m. 이런 건물이 세 동이다. 3층의 각 층을 오버브릿지로 연결하고, 아치형 지붕으로 덮었다. 긴 아케이드다. 이름이 특이하다. 굼GUM. 러시아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다.
유독 눈에 띄는 매장 하나. 라이카Leica. 코카콜라 뚜껑처럼 생긴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남편 라이카 매장 보고 싶습니까?"
"아. 아닙니다." 라고 말은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매장으로 향한다. 한국에서도 가본 적 없는 매장이다. '찰나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평생 사용한 카메라, 라이카. 그와 얽힌 재미난 일화가 하나 있다.
카르티에 브레송이 미국 케이프코드에 있는 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을 때, 그의 옆에 젊은이 몇 명이 있었다.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있던 그가 자리를 벗어나자 그들 가운데 한 명이 말했다.
"저 사람 좀 봐! 자기가 카르티에 브레송인 줄 아나 봐!"
카르티에 브레송은 그냥 웃고 말았다고 한다. 대인배다. 살 (돈은) 생각은 없지만 둘러본다. 매장 앞에 걸린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오드리 헵번.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배경은 바로 이곳 굼.
"부인 여기 오드리 헵번이 왔었나 봅니다."
"그러게요. 여기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네요."
"무슨 영화에 나왔을까요? <전쟁과 평화>가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긴 했습니다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전쟁과 평화.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이다. 2001년, 이거 읽느라 죽는 줄 알았다. 책 다 읽고 영화나 보자 싶어 오드리 헵번이 나탈리아로 나오는 영화를 봤다. 보다 잤다. 어떻게 해도 지루한 건 지루한 거다. 그래도 안드레이와 나타샤(나탈리아의 애칭),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을 만났으니 그걸로 됐다. 나타샤, 내가 좋아하는 시인 백석의 시에도 나온다. 그 나타샤가 이 나타샤는 아니지만, 상관없다. 나는 나대로 읽는다.
<나와 나타샤와 힌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홀로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힌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는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힌 당나귀는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마가리는 오두막집이라는 뜻
* 이 시는 1938년 3월 잡지 "여성(3권 3호)"에 실린 시다. 나타샤는 1000억대의 요정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헌사해 길상사라는 절을 만든 기생 '자야'를 일컫는 것이다. (위키트리)
△ 모스크바 굼GUM 백화점. 구름다리와 아치형 지붕으로 연결되어 있다.
△ 자전거가 한 대씩 놓여 있다.
△ 라이카 매장. 자전거도 빨강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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