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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 이름에 대해 생각하다, 가로수길 - no.87 (2014년 7월 1일)

윤진 2015. 2. 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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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대해 생각하다, 가로수길


윤진

그림 이솔



이런 개그가 있다(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각 학교 총학생회장들과의 만남에서 써먹은 적도 있다). 전공별로 생각하는 산토끼의 반대말. 생물학과 '죽은토끼', 지리학과 '바다토끼', '들토끼', 농업경제학과 '집토끼', 화학과 '염기토끼', 경영학과 '판토끼', 국문학과 '끼토산'. 그러면 가로수길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신사동 주민센터에서부터 TBWA코리아까지 이어지는 약 670미터의 길은 80년대 새마을운동 때 심은 은행나무 덕에 '가로수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2005년 이 거리로 이사해온 TBWA코리아는 가로수길에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하고, 2008년 <가로수길이 뭔데 난리야?>라는 책을 한 권 발간했다. 광고기획사답게, 서울 각 지역의 인상을 한 단어로 표현했다. 삼청동은 경륜, 홍대 앞은 열정, 인사동은 전통, 대학로는 표현, 청담동은 과시. 가로수길은? 로망이라 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가로수길의 '로망'은 여전히 유효할까? 갤러리와 디자이너 가게들, 특색있는 레스토랑이 들어서, '떼돈을 벌기보다는 내 가게는 내 식대로'라는 '로망'이 있던 가로수길에는 대형 패션업체와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하나 둘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들면 건물 임대료가 오른다. 작은 가게들이 밀려나고 대자본을 가진 기업들이 들어온다. 작은 가게들은 메인 거리를 벗어나 임대료가 저렴한 인근 지역에 들어선다. 홍대앞 상권이 상수로, 합정동으로, 연남동으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가로수길 상권이 옆 거리로 확산된다. 가로수길 옆 '세로수길'이 뜬다. 그곳에 '로망'이 가득한지는 모르겠지만, 온갖 디저트 가게들이 가득하다는 건 분명하다.


쏠 : 저기, 엄청 유명하고 맛있는 타르트 가게야. 저기도 맛있고.

윤 : 쏠, 여기 가로수길이야. 여기 있는 가게들은 다 유명해. 저 가게 매장이 수원에 문을 열면 뭐라 하겠어. 가로수길에 매장 있는 유명한 가게라 하겠지. 저기 아이스크림 가게 봐봐. 엄청 맛있는 가게일 거야. 저 빵집도...

쏠 : 고만해라.


먹고 싶은 것들 가운데 하나를 힘겹게 골랐다.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먹었다. 예전 후배 손군이 '고마워 케이크'라고 있는데, 보면 정말 고맙게 생겼어요, 라던 케이크였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게 고맙게 생긴 거란 말인가!)


윤 : 여기 이름이 왜 세로수길인지 알아?

쏠 : 설마 가로세로?

윤 : 응. 그렇게 붙은 이름이라는 설도 있어. 또, 가로(街路)는 넓은 길이란 의미고 세로(細路)는 가늘 세(細)를 써서 좁은 길이란 의미여서 세로수길이라 붙었다는 설도 있고.


세로수길에는 나무가 없지만 작명에 있어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심지어 가로수길 옆길을 나로수길, 다로수길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으니, 가로수길을 읽는 방법이 산토끼 못지 않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