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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 대지가 건축이 되고, 건축이 대지가 되다 - no.85 (2014년 6월 1일)

윤진 2014. 12. 12.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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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가 건축이 되고, 건축이 대지가 되다

 

윤진

그림 이솔

 

 

 

이대는 언제나 공사중이었다. 2003년 공간위원회를 구성한 이화여대는 캠퍼스의 부족한 공간을 위해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2005년 공사를 시작한 ECC(Ehwa Campus Complex)는 2008년 5월 공사를 마쳤다. 지하 6층의 건물이었다. ECC 공사가 끝나고 정문 공사가 이어졌다. 캠퍼스 곳곳 학생회 학생들이 걸어놓은 현수막이 보였다. "학교는 언제나 공사 中" 공사는 계속되고, 등록금은 매해 올랐다. 매년 등록금 투쟁이 벌어졌다. ECC에 고급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입점하며, '종합상업시설세트'라는 비판이 일었다. 

 

건물만 놓고 본다면 독특한 발상으로 만들어진 획기적인 건축물이다. 대지와 건축이 만나는 랜드스케이프 건축이었다. 정문에서부터 경사진 길의 지형을 살려 따라 올라가되, 시설들은 그 아래에 배치하였다. 가운데를 갈라 유리벽을 세워 건축물 내부로 빛을 투과시켜, 쾌적한 내부 공간이 만들어진다. 자연채광과 통풍이 가능하고, 지열을 활용해 에너지 소모가 줄어든다. 지하 건축물 위, 지상은 산책로로 덮인다. 정문을 따라 걸어오는 길은 지상만이 아니라 건축 사이로도 이어진다. 건축물 사이에 놓인 길은 넓고 거대해, 지하공간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지하이면서 지상이 되는 다층적인 공간구조를 지니고 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마저도 꺾고, 선정된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의 작품이다.

 

도시를 향해 대학을 개방시키고 도시를 대학내로 끌어들이고자하는 건축가의 의도처럼 ECC는 외부와 캠퍼스를 잇는다. 학업 공간과 문화 공간, 상업 공간이 공존한다. 점이지대다. 건축가의 의도와 건물의 활용이 부합한다. 그의 작품들 가운데 ECC를 특히 좋아해, 서울을 매년 찾아오는 건축가는 호텔에 짐을 풀고 ECC에 와 커피를 마신 뒤, 건물을 둘러본다고 한다. 조금 과장하자면, 학생들보다는 외부인인, 그가 오히려 이 공간에 더 어울리게 느껴진다. 

 

ECC가 지닌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건축물 앞에서면 나는 거대함과 육중함에 압도되는 기분을 느낀다. 폭포처럼 늘어선 철골 구조물이 그려내는 수선이 위압적으로 와 닿는다. 깊은 공간감은 인상적이지만, 사람들을 지나치게 작게 만들어버린다. 차갑고 이질적이며 낯설다. 하늘에서 바라본 ECC는 캠퍼스를 할퀴고 지나간 생채기처럼 두 줄이 선명하다. 그 자국 속으로, 거대한 자본이 만들어 낸 풍경이 드러난다.

그 풍경은 결국, 익숙해진다.